求韩国著名随笔《무소유》的中文翻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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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1个回答  2009-01-29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 젖 한 깡통, 허름한 요포 여섯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 뿐이오.\"

마하트마 간디가 1931년 9월 런던에서 열린 제2차 원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 세관원에게 소지품을 펼쳐 보이면서 한 말이다. K. 크리팔라니가 엮은 <<간디어록>>을 읽다가 이 구절을 보고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의 내 분수로는.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살만큼 살다가 이 지상의 적(籍)에서 사라져 갈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것 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된 것이다. 물론 일상에 소용되는 물건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될 정도로 꼭 요긴한 것들 만일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 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마만큼 많이 얽히어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난해 여름까지 난초 두 분(盆)을 정성스레, 정말 정성을 다해 길렀었다. 3년 전 거처를 지금의 다래헌(茶来轩)으로 옮겨왔을 때 어떤 스님이 우리 방으로 보내준 것이다.

혼자 사는 거처라 살아 있는 생물이라고는 나하고 그 애들 뿐이었다. 그 애들을 위해 관계 서적을 구해다 읽었고, 그 애들의 건강을 위해 하이포넥슨가 하는 비료를 바다 건너가는 친지들에게 부탁하여 구해오기도 했었다. 여름철이면 서늘한 그늘을 찾아 자리를 옮겨 주어야 했고, 겨울에는 필요 이상으로 실내 온도를 높이곤 했다.

이런 정성을 일찍이 부모에게 바쳤더라면 아마 효자 소리를 듣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렇듯 애지중지 가꾼 보람으로 이른봄이면 은은한 향기와 함께 연둣빛 꽃을 피워 나를 설레게 했고, 잎은 초승달처럼 항시 청정했었다. 우리 다래헌을 찾아온 사람마다 싱싱한 난(蘭)을 보고 한결같이 좋아라 했다.

지난해 여름 장마가 갠 어느 날 봉선사로 운허노사(耘虚老师)를 뵈러 간 일이 있었다. 한낮이 되자 장마에 갇혔던 햇볕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고 앞 개울물 소리에 어려 숲속에서는 매미들이 있는 대로 목청을 돋구었다.

아차 ! 이때에야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난초를 뜰에 내놓은 채 온 것이다. 모처럼 보인 찬란한 햇볕이 돌연 원망스러워졌다. 뜨거운 햇볕에 늘어져 있을 난초 잎이 눈에 아른거려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허둥지둥 그 길로 돌아왔다. 아니나다를까, 잎은 축 늘어져 있었다.

안타까워 안타까워 하며 샘물을 길어다 축여주고 했더니 겨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어딘지 생생한 기운이 빠져버린 것 같았다.

나는 이미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执着)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념해 버린 것이다. 이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난을 가꾸면서는 산철(승가의 游行期)에도 나그네길을 떠나지 못한 채 꼼짝 못 하고 말았다. 밖에 볼일이 있어 잠시 방을 비울 때면 환기가 되도록 들창문을 조금 열어 놓아야 했고, 분(盆)을 내놓은 채 나가다가 뒤미처 생각하고는 되돌아와 들여놓고 나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 지독한 집착이었다.

며칠 후, 난초처럼 말이 없는 친구가 놀러 왔기에 선뜻 그의 품에 분을 안겨주었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날듯 홀가분한 해방감. 3년 가까이 함께 지낸 \'유정(有情)\'을 따나 보냈는데도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

이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의 의미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所有史)처럼 느껴진다. 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것 같다. 소유욕에는 한정이 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일념으로 출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물건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아 사람까지 소유하려 든다. 그 사람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는 끔찍한 비극도 불사(不辞)하면서, 제 정신도 갖지 못한 처지에 남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소유욕은 이해(利害)와 정비례한다. 그것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간의 관계도 마찬가지. 어제의 맹방(盟邦)들이 오늘에는 맞서게 되는가 하면, 서로 으르렁대던 나라끼리 친선 사절을 교환하는 사례를 우리는 얼마든지 보고 있다. 그것은 오로지 소유에 바탕을 둔 이해관계 때문인 것이다. 만약 인간의 역사가 소유사에서 무소유사로 그 향(向)을 바꾼 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싸우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주지 못해 싸운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간디는 또 이런 말도 하고 있다.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 그는 무엇인가를 갖는다면 같은 물건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가질 수 있을 때 한한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자기 소유에 대해서 범죄처럼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고많은 물량일지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 쯤 생각해볼 말씀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逆理)이니까.

翻译:

事实上, 当人来到这世上时, 什麼东西也没带来, 活到名字消失, 离开人世时, 也是空手离开。在活著的过程中, 我们有了许多所谓生活上的必需品。不过这些都是一定需要的物品吗?仔细想一想, 不一定要的东西还不少。

我们虽因需要而拥有物品, 但有时也因那些东西带来不少牵挂。所以拥有什麼, 相对的就会为它所束缚。原来因为需要而拥有的, 到后来主客颠倒, 反而因此失去自由。或许, 因为比别人拥有更多而炫耀, 但炫耀多少, 同时也得承受多少束缚折磨。

到去年夏天之前, 我非常用心和费心地养了两盆兰花。三年前迁到茶来轩时, 一位法师送来兰花, 成为房间内除了我以外的生命体。为了照顾这同居的小家伙, 我特地买了养兰的书看, 为了它的健康, 除了给它好的肥料, 夏天还移到凉快没有日晒的地方, 冬天则把房间内的暖气调降到低温。如果把这样的心思用在照料父母, 恐怕早就成为孝子。像这样百般地关爱它, 也是有些回报。早春时, 淡雅的花香, 含苞待放浅色的花朵, 清新如上弦月的叶片, 让人期待, 也获得茶来轩客人的赞赏喜爱。

直到去年夏天的某一天, 我因要去奉先寺拜访耘虚和尚, 外出途中, 原来笼罩在雨季中阴沈的天空, 突然露出晴朗的阳光, 树木里流窜出蝉鸣声, 此起彼落地与溪谷潺潺的流水声唱和著。啊呀! 想起兰花不放在外面的庭院吗? 此时突然怪起眼前久未露面的难得灿烂阳光。一想到兰花可能会被炽热阳光晒到萎缩的光景, 顾不得一切, 慌慌张张地折回了住处, 果不出所料, 兰花已经奄奄一息。心中有说不出的惋惜, 赶快给它浇水, 不久总算恢复原状, 不过, 似乎没有了原有的元气。

那时, 我才深切领悟到执著的难受。没错, 我对兰花太执念了。为了养兰, 不但无法外出行脚, 有事外出时还得记得把窗门打开, 让空气流通切换。因为花盆摆在外面, 也不只跑回家两, 三次, 这一切真是过於执著。我决定赶放下这执著

几天以后, 我把它送给一位如兰花般沈静的访友。我终於脱离了束缚, 虽说有三年共处的情感, 但是如释负重的解脱胜过心中的不舍与失落。真是愉快的解脱!本回答被提问者采纳
第2个回答  2009-01-29
《无所有》 法顶法师 着 陈香华 译

【导读-住在没有门牌,也没有门号地方的山僧】 -------陈香华

“现在我住在一个没有门牌,也没有门号的地方。我的住处非常寒酸原始,没有什么可说的,但我很喜叮�蛭��梢匀梦业ゴ康拇嬖凇N抑皇窃菔弊≡谀嵌�樟耍《杂诔黾胰死此担�挠惺裁从涝兜淖〈Γ�拖夹锹谜哂涝吨皇枪�汀!保�ǘ?

翻译书的人,最怕的是第一眼读到让自己感动的书。因为有时那反而是译书的阻碍。一有了感动,意味着在译书的过程中,将会投入更多的感情,及不可自拔的陷入书中情境。当我第一次读到法顶法师的书时,就是这种情况。如同在本书中法师所言,一本好书当然是能让读者畅通无阻的读下去,但是更好的书是在阅读时,会让你一再阖上的书。译书就是精读一本书,在进行当中人与书的情绪搏斗,有时是言语难以形容的。以至于在几年前,我曾答应法师译“山中花开”,只完成了部分,至今还未能竟书。这原因当然一部分来自我的惰性,不过在译书过程中思绪无法冷静集中也是理由之一。

二○○五年初春,《天下杂志》拟出版法师的《无所有》一书。与法师相当亲近两人并曾共着许多脍炙人口好书的作家柳时和,立刻打电话给我,想来他也知道我还欠了法师一本书。于是我再也不能推辞拖延了。同时,这次的运气与机缘也很好,译的是法师著作中最小本,但是影响力最深远的一本。

薄薄的一本书,在将近三十年期间始终不坠,是什么道理呢。

是怎么样的人,一个人住在一个没有门牌,也没有门号的地方呢。

法师受到许多人尊敬与敬佩的原因,是来自他身体力行的实践精神。他用清贫的思想,恒久毅力的行动,在我们面前实现了人所失去最可贵的单纯,并告诉大家什么是真正修行者的面貌。

曾经有人在夏天里前往之前法师在松广寺后山所居的佛日庵。

到佛日庵,不见法师踪影,猜想或许正在休息,因此走到凉亭边,轻声的呼叫着法师。不久,看到法师从远远的地方走过来,随声问道:“法师,在这样热的天气里,您在做什么事?”

法师回答:“怕打瞌睡,我正在用刀削竹子。”
为了驱走睡意,法师用刀在削竹子。刀和竹子都是非常锐利的东西,稍微想睡,一不留神失手的话,是很危险的。在这炙热的天气里,如能在树下睡个午觉,该是何等惬意的事!法师一个人独居的地方,应该是可以自由自在地享受个午觉,但法师为了让自己清醒,正在用刀削着尖锐的竹子。

“我一直是独自一个人生活,如果不自我监视的话,如何能修行?一天开始偷懒的话,可能会变成一个月偷懒,那样的话,生活就会完全走样。”法师说。

法师经常是谈笑风生,但从这件事,可以看得出来他是如何的在每个细微处,自我要求要成为一个真正的修行者。

法师自十多年前起,更是完全放下所有,迄今一个人住在江原道山区,一个电力还没接通,也没有电话的地方。连吉祥寺门下弟子也不清楚的山中寄居处。

对于自己所居住的地方,曾在文中如此描述过:

“我所居住地方每到冬季时,温度都会降到零下二十度。因为位处高山又靠近溪边,因此天气非常寒冷。如果气象预报说大关岭的温度是零下几度时,这儿通常还要再往下掉四、五度左右。在这里,冬天溪水结成厚冰,必须要用斧头锹碎,但是不到一会儿,又会很快的结冻。身在此地,不会特别感觉到冷,只是呼吸时鼻子眼睛十分难受,但像这样的生活都能忍受。不知是否还有人住在像这样冷的地方。不过,所谓的季节,不就是该冷的时候冷,该热的时候热吗?”

在山中没水没电如何过生活呢?

“若是依照出家以前的个性,必然会想办法请人接电,但是这样做,就失去了来到这里居住的意义。在文明科技这么发达的世上,走到哪儿,哪儿没电呢。

刚开始当然觉得不方便,但如果把电接通了,那么接下来的是冰箱、电视、收音机、影像机、烤面包机或是洗衣机等物品,必然相继的一一搬运进来。那又何必住在这里呢?”

法师只在有法会的时候才下山。他告诉大家最近的山中生活是,因去年中秋节带来的豪雨,滚落下来大石的隆隆大声,让人彻夜无法成眠。又离住处约十公尺下面十五公尺宽的溪水上,本来可以通行的石块也被急流冲走,因此对外交通中断了十多天。

也有人问起,一个人住在山中不会害怕吗?
“一切的‘害怕’,来自于‘心’的摇动。白天和黑夜其实都是一样的,自然界的峡谷、山川、树木、岩石等,总是伫立在那里,不会因为白天与黑夜而有所改变。如有差别,只是在阳光照射的明暗不同而已。所以‘害怕’是由人心中自生。是否害怕那是自来内心瞬间生起的动念。”

对于山,法师将它视为是与人共生的生命体,一切生命的根源,生长无限浩瀚生命的自然。也因为对山的崇敬,所以韩国人说去山里,会用“入山”,来替代“爬山”、“登山”等有征服意味的字眼。长久山居岁月的生活,让他对自然万物运行的法则有很深刻的体会,所以他告诉我们为什么坚硬结实的树木会倒塌在柔弱雪花中的道理。山教导人许多事,在人生当中我们所经历的许多教训,在山中皆历历可见。

法师所倡导的“无所有”精神,在韩国可以说无人不知无人不晓,影响至为深远。“无所有”是他的修行主轴。

他说:

“无所有不是要你什么都不要,不是一切都空无一物的意思。“无所有”指的是你不需要的,不要去拥有、占有。当你充分了解什么是“无所有”时,才能让生活过得自在真如。”

为了生活人通常必需拥有很多的物品。可是当法师的住处遭窃时,他感到惭愧,因为实际留下的还是比小偷拿走的多。他忏悔自己有的比别人贪婪动念拿走的还多。

那么人要所有到什么极限,才能有尊严的活个像人呢?反过来说,到底所有多少以上,会使人的本性堕落呢?

“所有并不能充分给予我们想要到达的快乐极限。幸福与快乐是从你能舍弃多少不必要的开始。幸福的一把尺,就在每个人的心中。

单纯的生活,可以让我们的心沉稳平静,去打开更辽阔的心窗。为了到达单纯的生活,要彻底的节制自我与维持自我平衡的秩序。

不看也罢的不去看,不听也罢的不去听,不值得读的不去读,不需要吃的不去吃。要少看,少听,少买,少吃这样节制,才能成熟升华成为真正的人。当我们选择清贫的思想时,心灵将更为富有,那不是消极的生活态度,而是选择了智慧的人生。
所以,人要活得像人,要懂得共生分享。在我周遭的人,都是与我有关系有因缘的。他们是我的分身,是我的另一个身体。”

法师独自一人生活在佛日庵或是江原道深山,或许是为了追求俭朴节制的生活,从他的谈话中,也让人感到生活是孤独的,但他却从来没有失去对周围事物悲天悯人的同情心。在冬天,他铲除积满厚雪的山路,怕的是在黑夜到河边的山中动物滑倒,预先敲碎结冰的湖水,让那些动物有水喝,还有把收到的版税,帮助修理房子的工人等,都是让人非常感动的事。

从法师的身上,让我们知道了“分享是持续付出对别人的关心”。透过爱与慈悲我们才会知道什么是人存在的意义。

因为无所有,所以对于生死也坦然面对,有生必有死,有聚必有离。人出生时虽有先后顺序,但死却是不管谁先走的。万物任谁也无法避免衰老凋零。人的死不过是脱掉一件穿旧了的衣服而已。法师曾说很多读者,在读过他的书以后,都非常好奇到底他是个怎么样的人。在想像中期待是面貌清秀,风度偏偏。然而当他们见到时,常难掩失望的表情。原来法师也是一个长相平凡,身材瘦得干瘪的人。每当读者有这样的反应时,他也是觉得非常抱歉。

人经常在意外在的美丑,老死的恐惧,却不知自己究竟是怎么老去的,人生是怎么渡过的。

在这本书中,不是为了要让你聆听法师开示什么高深的佛理,或是觉悟人生。如果你读了以后,能在过多堵塞的知识、快速拥挤的资讯及噪音中毒等,这些现代人活着的富裕监牢里,检视目前自己所在的位置的话……。从舍弃、净空开始,让自己回到本来干净的面貌生活的话……。

就算是慢慢的,一点一点的改变,也能让我们今天过得比昨天更好!

《无所有》 法顶法师 着 陈香华 译

第一章 复原的佛国寺

最近白天的气温已经到处让人感受到初秋渐渐散发出的气息。清晨的溪边漂浮着迫不及待飞舞的层层落叶,树林中的是承受不了笼罩而来浓雾的微风残枝。夜里雷雨交作声,忽隐忽现地传入梦乡,仿佛还想挽留夏天最后的热情。经雨水洗涤过的苍穹,天高气爽,再也不是布满层层乌云的夏季了。

宿疾突然又发作了。有着想潇洒放下的冲动,到一处不受拘束的地方散散心。就这样,前几天有一趟佛国寺之旅,去了才刚重新复原的佛国寺。

一到秋天,前往庆州寻幽的旅客络绎不绝。散发着千年新罗文化的徐罗伐(译注:新罗旧名),是让初行者也不会感到陌生的地方。光是看到遗下基石的皇龙寺遗址,还有与佛寺遥遥相望,南山两侧连绵的山棱线,都会令身心舒畅,庆州是可以呼吸到浓浓乡愁的地方。

到庆州如同到其他古城拜访一般,在心中某处仿佛有片空白,好像什么未能填满的遗憾,像是舟船已离开的渡口,有着百般惆怅的心情。这其中怀抱新罗千年历史,佛国古寺衰落的残影,更叫人不胜嘘唏。掉落栏杆的青云桥、失去柔和曲线的白云桥、丹青斑驳失色却依然庄严的紫霞门、鸱尾飞扬的泛影楼,以及从前庭紫罗门上左右望去的释迦多宝塔空间……。

曾几何时这般景象,带领我们大步跨过了千年岁月。不过佛国寺颓废的面貌已经完全成为过去了。

面对着复原的佛国寺,无法再持以怀古悼念的情感。过度的想像反让人没有了可依靠的空间。环绕四方的回廊已经堵塞了以往的记忆,灿烂华丽的彩绘明白地写下一九七三年复原的见证。

历经四年投入无数人力与经费,佛国寺终于复原了。听说连一块石头、一根缘木都是经过科学考证,慎重地依照原貌复原。说是依照原貌复原,但悠久的千年风华倒是失色不少。

即使如此,仍要向有关当局及参与复建的专家学者,对于他们所投注的心血与努力表示敬意。即使令人遗憾的是,我们心中曾经熟悉的佛国寺已经消失了。千年伽蓝淳朴的氛围已不复见,如今复原的佛国寺好像从优雅的风铃声变成了响亮的新农村进行曲。

第二章 我的嗜好

嗜好如同人的脸孔形形色色。嗜好纯是个人自由主观的选择,本来论谁也不好指指点点别人的嗜好。在某些人眼中看来,或许会说何必要有这种爱好,但对当事者而言,那是绝对的属于个人的私领域。不过,这种主观的坚持,有时候可能是盲目的,会因而产生藉嗜好冠冕堂皇之名,而有过度的浪费与颓废。

每当官场职务异动的消息报导出来时,打高尔夫的嗜好,似乎已成为上位者休闲生活的表征。人们对高尔夫的喜好,不知是从何时开始的。现代社会中像我们这群落伍的人,甚至连见识一下高尔夫球场的机会都没有。不过打高尔夫看起来真是不错的样子,难怪美国前总统艾森豪都说,如果没有球赛,自己不知道如何打发时间。

在一片绿油油宽阔的草地上,呼吸着新鲜的空气,跟三五好友一起打球,光是想像这样的光景都会觉得很愉快。打小白球的人认为可以消除工作压力,让生活产生活力,旁观者看起来不过是单调的游戏,但是对热衷的人来说,却认为只有高尔夫是最好的休闲爱好。

如果高尔夫是这样好的嗜好,但为什么到现在人们对它还带有排斥感?理由很简单,因为高尔夫不是每个人都可以享受的嗜好,它是属于特定阶层的娱乐。使用的球具都是价格昂贵的进口货,那是花外汇买来的。同时加入小白球俱乐部,取得会员证的高额代价,都是让领一份死薪水的上班族望尘莫及。又坊间巷里所谓政治与事业交易的地方不是办公室,而是在球场的说法也恐非空穴来风。

像所有的事一样,玩嗜好要像嗜好,要先衡量是否符合自己的本分。根本没有打高尔夫球的能力和身分,却为了维持面子而硬撑。本来好不容易可与家人共处周末,却为了讨好上司而去球场,辽阔的草原和新鲜的空气,分明对他反而是公害。

‘高尔夫是为惩罚人的罪、苏格兰喀尔文主义者所创造出的传染病。’是一句值得我们深思的话。

如今我国的现况是即使强调个人的权益,仍以国家发展为优先。限于特殊阶层只能享受的嗜好,不但加深贫富阶层意识,也是引起国方衰退的问题所在,这种现象无法符合维新运动的理念。健康的嗜好与其是自我的享乐,不如是能培养高雅品味,让生活更有意义,并且应该给予社会正面良好影响的嗜好。

今天我的嗜好是永无止尽、永无止尽的忍耐。

<无所有》 法顶法师 着 陈香华 译

第三章 非读书季节

过了中秋节,最近的天气是昼夜分明,典型的韩国秋天。在这晴朗清爽的天空之下,可以做些什么呢?仅是倘佯在树下,望着渐渐成熟变黄的田野,就能让人血脉循环畅通。

手背被玫瑰花刺伤,受苦了将近一个月。原本自由灵活的手,忽然不听使唤,才体会到真是不方便。虽然想起因玫瑰花刺而死的德国诗人里尔克,心中有些害怕,但所有的病到时应自然就会好吧?想到一堆待洗的衣物,终于可以亲手洗涤,心中有着无限畅快。像今天晴空万里的好天气,该做的事就是到溪边洗衣服。对于生活简单的独居者来说,真是一举两得。

在这凉快的天气里,我能做什么事呢?

是面壁打坐呢?还是打开尘封已久的佛经?这样好像有点装模作样,同时也太辜负这美好晴朗的季节。即使是无所事事,如能聆听到发自内心的声音,还需要从外增添什么吗?

昨天与一群主张秋天是读书好季节的朋友见面,我们有了相当愉快的结论。我对‘秋天是读书季节’持完全相反的想法,秋天对读书而言,是最不适当的。当然,我不是不明白在这不冷不热的天气中,沉浸于书香之中、度过漫长秋夜的意义,但难道只能埋首在白纸黑字的书堆中吗?我的意思是,此时我们何不解放一下资讯与知识。在这季节里,与其从外寻觅,不如静下来,听一听自己内在的声音,那是宇宙赋予的时节里更适合做的事。

读书有季节之说,本身就很奇怪。好像是跟书疏远已久,特别要设定时节来读书。

工人、政治家或军人可以说读书是爱好,但学生说读书是爱好真是可笑。学生的本分是从读书中学习,如果把读书说成是爱好,岂不是令人啼笑皆非。不可讳言,我们的读书市场是舍不得花一、两百块买本小书,但外国百科全书却可卖到超过三万多册。

虽然如此,在这秋天我还是会读几本书。我要选的不是一口气马上就能读完的书,而是读到一半会让人想阖上的书。当然,一本好书能让读者畅通无阻地读下去,但更好的书是在阅读的过程中,会让人一再阖上。那是书中一、两句带给我们无限思考的话,透过它来读自己。这种好书犹如一面镜子,映照着自己,让人倏然开眼,叫醒在日常中怠惰的自我。

这样的书不是用知识或文字写的,而是犹如在宇宙散发出的影响力下完成的。读到这种书宛如跟好友愉快相聚,游目骋怀在时空之外,能安稳愉快地休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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